보도자료 [광운미디어] 광운인 릴레이 인터뷰 - “창학 100주년 전 세계 100대 대학으로 진입할 것, 박영준 석좌교수가 광운대에서 세계 100대 대학을 꿈꾸는 이유”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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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학 100주년 전 세계 100대 대학으로 진입할 것, 박영준 석좌교수가 광운대에서 세계 100대 대학을 꿈꾸는 이유” [원문보기]
대우그룹에서 청와대까지 : 파란만장한 ‘멀티플 인생’ 박영준 교수가 말하는 광운대의 글로벌 전략 (박영준 석좌교수 대학원)
1934년 설립된 광운대학교가 창학 100주년을 향해 가고 있다. 8년 후면 맞이하게 될 100년, 박영준 석좌교수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구성원 모두가 단합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은 반드시 가능합니다.” 기업인으로 시작해 국회·청와대·지식경제부를 거친 그의 이력은 단순한 스펙이 아니다. 그 모든 경험이 지금 광운대의 글로벌 전략과 만나고 있다.

기업에서 일하며 얻은 것은 직책이 아닌 기업정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영준 교수가 택한 첫 직장은 법원이나 로펌이 아닌 대우그룹이었다.
입사 후 6년은 MIT 기계공학 박사 출신인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당시 대우자동차 부품 사장) 곁에서 보냈다. 대우전자의 ‘탱크주의’로 유명한 배순훈 사장에게서 ‘첨단기술도 중요하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제품이 진정한 혁신’이라는 철학을 배웠고, 공학적 마인드의 실전 경영을 체득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의 그룹 기획조정실 전략팀 과장으로 옮겨, ‘세계 경영’의 국내 실무를 3년간 담당했다.
“대우의 사훈은 창조·도전·희생입니다. 마지막 ‘희생’이라는 단어가 기업 사훈으로서는 낯설지요.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쳐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킨 것은 선배 세대의 희생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세대가 한 번 더 희생하면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강국이 된다 그것이 대우 정신의 핵심이었습니다.”
대우에서의 9년이 그에게 심어준 것은 직책과 실무경험 그 이상이었다. 어떤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도전 정신, 담당 과장이 제일 큰 실권을 갖는 과감한 권한 위임의 수평적 조직 문화, 이 두 가지가 이후 그의 모든 선택을 지탱하는 뿌리가 됐다.
11년의 입법부 수업, 기업인에게 없던 감각을 심다
1994년, 전환점이 찾아왔다. 김우중 회장의 추천으로 당시 국회의원이던 이상득 의원 보좌진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낯선 세계였다. “이상득 의원은 10년간 국제적인 종합상사인 코오롱 CEO를 지낸 분이었어요. 기업 출신이라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과감하게 인생을 바꿨지요."
11년간의 입법부 보좌 생활은 기업인에게 없던 ‘정책 감각’을 그에게 심어줬다. 이후 17대 대선 캠프의 핵심으로 활약했고, 대통령 당선 후에는 당선인 비서실 총괄기획팀장을 거쳐 청와대로 불려 갔다.
“인수위를 마무리하고 대구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던 마지막 날 밤, 당선자께서 저를 불러 ‘출마를 포기하고 청와대에서 나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렇게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영욕의 시간은 있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나타나게 돼 있으니까요.”
지식경제부 제2차관 시절 그는 에너지·자원 확보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에너지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구조적 취약성을 타개하기 위해 40여 개국을 방문했고, 임기 내 주요자원 자주개발률을 4%에서 14%로 끌어올렸다. ‘왕차관’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강한 추진력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일하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실용이 곧 글로벌이다, 광운대를 택한 이유
공직을 마친 뒤 박 교수가 발견한 확신은 하나였다.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온 것은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 덕분입니다.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것도 인재에서 시작됩니다.” 그 확신이 그를 교육 현장으로 이끌었다.
광운대와의 인연은 한 언론인의 소개로 조선영 이사장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야기해 보니 저와 생각이 완전히 같은 분이었습니다.” 한국 대학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조 이사장의 날카로운 문제의식, 실용 중심으로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확고한 방향성, 모든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순간 ‘이분을 도와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저는 소위 ‘SKY대학’ 출신이지만, 그 명성에 기대어 안주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데 기득권에 머물러 있다면 미래는 없습니다. 광운대는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 대학은 세계 무대에서도 경쟁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학교가 부여한 미션은 단 하나, 광운대의 글로벌 도약에 필요한 국내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 강의실보다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다. 실제로 그는 광운대의 국제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세계 유수 대학들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직접 구축해 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공계 명문인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NTU),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 평판을 자랑하는 영국 런던의 킹스턴 대학교(Kingston University)와의 협력 채널을 열었고. 베트남에서는 경제·경영 최고 명문인 국립호치민경제대학(UEH)와 이공계 최고 대학의 하나인 호치민백과대학을 광운대와 연결했다.
반도체·로봇·방산, 광운대가 그리는 협력의 지도
국립대학인 창원대와의 협력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서울 동북부에 소재하며 전기전자·반도체 분야에 강점인 대학과 우리나라 방산·원전산업의 기반인 기계산업의 핵심인 대학을 결합한 이 모델에 대해 교육부는 ‘지방 국립대·서울 사립대, 기계·전기전자 중심 대학 간 협력으로 전례 없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두 대학은 올해 모두 로봇특성화 대학으로 지정돼 있어 시너지 가능성이 더욱 크다.
“4월 초 조선영 이사장, 윤도영 총장을 비롯한 광운대 수뇌부와 함께 창원을 방문해 구체적인 협력 로드맵을 논의했습니다.”
또 다른 협력은 국방 반도체 분야에서 진행 중이다. 국방 반도체 90%가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 속에서 정부는 특별법을 만들고 컨소시엄을 견인했다. 박 교수는 광운대를 이 국방반도체 컨소시엄에 연결했다. “반도체 설계 분야 핵심은 서울에 집중돼 있습니다. 광운대가 그 역할을 맡고, 지방 거점의 후공정과 협력하면 완벽한 분업 체계가 됩니다.”

결국은 사람, 단합이 기술보다 먼저다
박 교수가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는 것은 기술도, 자금도 아니다. 그것은 ‘단합’이다. 그는 힘의 속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힘이 하나에서 둘로 쪼개지면 절반이 되는 게 아니라 4분의 1 이상으로 줄어듭니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이것이 그가 수십 년간 기업·정치·행정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진리다. 큰 조직일수록 분열의 비용은 산술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 믿음은 광운대를 향한 낙관으로 이어진다. 그가 보기에 광운대의 잠재 역량은 충분하다. 반도체 전공 교수 22명, SCI급 논문의 압도적 수치, 반도체·로봇 특성화 대학 지정, 그리고 100년 가까이 한 길을 걸어온 이공계 전통, 이 모든 것이 광운대 안에 쌓여 있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한 방향으로 집결하는 힘이다. 이사장과 총장, 교수진과 학생까지 구성원 모두가 사명감을 갖고 단합한다면, 100주년 이전에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발굴하는 사람이 되라
그가 말하는 세계 100대 대학의 꿈은 수치 목표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단 하나의 결론을 끌어낸다. 결국은 인간이다. 기업도, 정책도, 대학도. 모든 것은 인간의 능력과 비전으로 이뤄진다. 교육이란 그 인간 안에 내재된 무한한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일이다. AI 시대가 됐든, 그 이전이든, 역사의 단계마다 혁명적 변화는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변화에 적응하고 활용한 주체는 인간이었다. 환경이 아무리 달라져도 교육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세요. 직접 경험이든 독서나 여행, 학술 행사를 통한 간접 경험이든, 그것이 쌓이면 자기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인슈타인도 제네바 호수를 산책하며 E=mc²를 구상했습니다. 여유와 사색이 창의성의 토양입니다. 기술로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발굴해 기술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업과 입법부, 행정부, 교육 현장을 두루 누빈 ‘멀티플 인생’의 주인공은 오늘도 광운대의 글로벌 지도를 새로 그리는 중이다. 그는 말한다. “민간과 공직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경험은 불가능하다고 하죠. 그런데 지금은 멀티플·융합의 시대입니다. 제가 민간영역과 공공영역,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쌓은 경험 하나하나가 지금 광운대에서 쓰임 받고 있다는 걸 강렬하게 느낍니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한 인생의 모든 챕터가, 결국 광운대라는 한 지점으로 모이고 있다.